Korean novels short story YAMAN !! in Korean 김영관 소설집 "회오리바람" 국립도서관, 한국외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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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ZONE

In English !!
---------------야만의 풍습--------------------------------------------------
    "HEORIBARAM" -Yeungkwan Kim's fiction- ISBN 89-7954-002-7 ...                                      (FREE ZONE)
 야 만 의  풍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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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novelist Yeungkwan Kim
---------------------------------------------------------------------------- 김 영 관 ----------------------------------------------------------------------------
  사람들은 저마다 손바닥에 자신의 마음을 나태내는 표식이 있었다.
  그것은 숨길 수  없는 현재의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겉으로  아무리 즐거워하는 
사람이라도 해도 손등에  흰 색이 나타나면 분명 슬픈 것이다.  또 아무리 거짓말
을 잘 해서 남을 속이려고  해도 그의 손등에 나타나는 색깔이 검은 색이면 그는 
분명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장갑을  끼고 다니는 사람은 일단 의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추운 겨울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외에는 사람들은  장갑을 끼고 다
니지 않았다. 
  또 예를 들어 한 사람을 좋아한고 할 때 으례히  손등에는 붉은 색이 나타나고,  
화가 나을 때는 파란 색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네 가지 색 검은 색, 파란 색, 흰 
색, 붉은 색으로  모든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사
람들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되고 난  다음부터 사람들 세상은 참으로 달라졌다. 이
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속일 수가 없었다. 단 겨울을 빼고 그랬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솔직하게 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명백하게 
손등에 드러나기 때문이며,  손을 감추는 자는 엄벌에 처하도록  국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김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러 갔다. 물론 김의 손등은 붉은  색으로 불타 올
라 있었다. 그런데  여자를 만나서 고백을 하고 있는데 점점  여자의 손등이 파랗
게 변하는 것을  김은 발견했다. 김이 자신이 사랑을 고백하는데  여자가 화를 내
고 있다면 여태껏 분명 헛 사귀어 온 것이었다. 김의  손등이 흰 색으로 변하면서 
몹시 우울해졌다. 김은 여자에게,
  "그 동안 미안했어."
라는 말을 남기고 일어섰다. 여자는 웃고 있었다. 유쾌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만 그녀의 손등의 색깔은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다. 못된 마음의 표시인 것이다. 
  김은 그 여인을 잊기 위해 바람 부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
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깨끗이 잊어 주리라  마음 먹어다. 그러자 김
의 손등이 붉은 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음의 승화였다. 그는 아낌없이 한 여
자를 사랑했고 오늘  그 여자에게 비로소 첫  고백을 했는데 막상 여자의  본심을 
알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지만, 이렇게 가을비에 몸과  마음을 씻고 나
니 후련했다.  
  한편 여자는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손등을 꼭 감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천
한 마음의 색깔인 검은 색이 너무나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
지만 이 여자는 며칠이 지나면 다시 자신의 손등이 붉은 색으로 바뀌리라 다짐하
며 오늘의 수모를 참으며, 오히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김을 증오하고 있
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결국, 손등을 감춘 벌로 먼 나라로 유배되고 말았다.


  길거리에 퇴근 시간이  가까어 오면서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서로들 조심스
레 길을 걸어가며 조용히, 또는 유쾌하게  웃으며 이야기 하고 이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청년들이 떼를  지어 오면서 한 노인의 어깨를 닥  치며 지나갔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약간 비틀거렸다. 그래서 노인이,
  "에끼 이 놈들 !"
하고 호탕을 치자 노인의 손등은 금방 파란 색으로 변했다.  그 색깔로 봐서 여건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청년들이,
  "뭐야, 늙은이가!"
하면서 욕을 했다.  그러자 그들의 손들이 전부 아주 지저분한  검은 색으로 점점 
바뀌고 있었다. 그 깡패 같은 놈들도 부끄러운 것은 알았는지,
  "아니? 아니? 내 손이?"
하면서 꽁무니를 빼며 으슥한 골목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러한 풍습은 전부 인간이 유인원서 출발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는
데 그 유래는 침팬지가 서로  반가울 때 붉은 엉덩이를 서로 비비는 풍습에서 유
래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서로 좋다는 붉은 색뿐이었는데  인간이 점점 못되지면
서 검은 색과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말끔히 한 여자를 잊고  새롭게 생활을 하고 있는 김의 손등은 언제나 붉
은 색이었다. 즐겁고  홀가분한 나날이었다. 연민이 복잡한  감정 따위는 날려 버
리는 것이 훨씬  좋았다. 그러나 손등의 색깔이 슬픈 흰색으로  가끔씩 변하는 날
이 종종 생기게  되었다. 아무래도 젊은 나이에 이렇게 혼자  있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단 증명이었다. 그래서 김은  다시 한 여자를 찾기로 생각했다. 그
러자 마음이 즐거운지 손등이 붉은 색으로 변했다. 
  그 여자는 양지  바른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같은 회사에 있으면서도 
오늘 처음 보는 듯한 여자였다. 햇살이  그녀의 어깨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샛
노란 햇살이었다. 눈이 부셨다.  그녀는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고운 손등에는 멀
리서 보아도 빨간 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행복한 것이다, 김은 그
렇게 생각했다. 무슨 책이기에 저렇게 움직일 줄 모르고 즐거운 것일까? 김은 별
로 책을 읽는 편은 못 되지만, 오늘은 그 책을, 아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조금 다가섰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둘은 얼굴이  마주쳤다. 
그 순간 김의 손등은 샛빨간 색으로 물들여졌고 여자의  손등은 그대로였다. 김은 
그대로 지나쳤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 김은 그녀를 다시 그 자리에서 만났다.
  "무슨 책입니까?"
  "네?"
  "무슨 책을 그렇게 보세요?"
  "우리나라 소설 책이에요."
  "재미 있습니까?"
  "네."
  "제목은?"
  "회오리바람."
  "좋은 제목이군요?"
  "아세요?"
  "네."
  그녀의 손등도 김의 손등도 붉어져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날 이후 가끔 그자리에서 그렇게 만나곤 했다. 
  "이 책 빌려 드릴까요? 전 다 읽었는데."
  여자가 말했다. 
  "이 가운데서 무엇이 제일 재미 있습니까?"
  김이 물었다.
  "전선."
  여자가 대답했다.  
  "그래요?"
  김은 그 책을 받고서도 읽지 않았다.
  벌써 몇 번을 읽은, 바로 자신이 쓴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은 과장으로 발령이  나지 않았다. 벌써 7년째 대리였다.  그의 손등도 그 날
만은 파란 색으로  질려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아내가 또  투정을 부릴 것을 생
각하면 김은 더  마음이 아팠다. 아내는 없는 돈으로 아이들을  키우느라 마음 고
생이 많았다. 게다가 김은 소설로는 수입이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아낸 그야말로 
박봉을 쪼개 쓰고 있었다. 아이도 벌써  둘이었다. 언젠가 회사 벤치에 앉아 책을 
읽던 여인이 바로 김의  아내가 된 것이다. 아내의 손등에는 늘 그  날 햇살 같았
던 발간 색으로  물들여져 있었지만, 때로는 검은 색을 띠기도  했다. 그 날은 그
의 남편 김이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 술주정를 하는  날이었고, 돈이 없어 쩔쩔 
매는 날들이었다. 김은  점점 술이 늘고 있었다. 돈이 그까짓  갓 별 건 아니다고 
생각하며 아내와 행복한 신혼  살림을 꾸렸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김은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점차 견디기 힘든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번에 새로 과장이 된 박은 그의 동료였지만, 사장에게  갖은 아부와 부하들을 
못 살게 굴면서  자신의 이익을 꾀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의 검은 손등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장도  늘 검은 손등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병상린 
꼴로 인사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고 보면 김과  같이 샛빨간 손등을 
가진 자는 이 회사에 몇몇 되지 않았다.  거의 검은 손등을 가진 자가 많앗다. 그
래서 김은 자신의 손등이 붉다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회사를 그만둘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당장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용기
가 나지 않았다. 
  거리에 나가도 점점  검은 손등을 가진 자들이  붉은 손등을 가진 자들보다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검은 손등이 오히려  정당한, 세상을 능숙하게 처세한  
 자들처럼 행세하고 있는 판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제 검은 손등을  무관심하게 보기 시작했고  자신의 
손등이 검게 변해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  나라의 규율이 무너지고 
있었다. 검은  손등을 감추지 않게  되었으므로 점점 유배를 당하는  자들도 줄어 
들고 있어, 하루가  다르게 붉은 손등을 가진 자들이 설  땅이 줄어 들고 있었다. 
이제 붉은 손등은  비웃음 거리의 표적이 되고 있어, 일부러  손등을 검게 물들이
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었다.    

     
  김은 자신은 깨끗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가난을 참았으나 이상하게도 손등
은 점점 검게 변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마음에도  모가 나고 있었던 것
이다. 세상 보기 싫고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분명 그늘에서 좋은 일 하는 사람,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으련만,  김의 눈에는 모두가  더럽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도 어느 새 검게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뿐이 아이엇다. 
아내와 두 아이의 손등에도 검은  반점이 생기고 있음을 김은 종종 목격할 수 있
었다. 그것은 너무나 괴로운 현실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온 가족의 고통이기 
때문이었다. 
  거리의 사람들 손은 이제 붉은 색을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모두 점점 마음의 
거짓 상태인 감정이  없는 검은 색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붉은 색의 손을 
가진 자를 만나는 날이면 그야말로 행운이 찾아온 날이었다. 
  야만의 풍습은 선이었을까? 악이었을까?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김에게도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굴복이 필요하단 말인가?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의 손이  검게 변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독자들
과는 거리가 있는 타인이니  가난하게 정직하게 살아가길 바라는가? 난 독자들이 
원하는 쪽으로  그려 나가겠다.  아직 결정을 못했으면  천천히 알려달라. 독자를 
무시한 글을 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나의 손도  검게 변했으므로, 순수 창
작물도 내놓을  수 없다. 구미에  맞아야 잘 팔리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나 독자나  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구미에 맞는 게  반드시 현재 한국인의 
진정한 고뇌를 반영한다고 할 수 없다.  왜냐, 건방진 말이지만 작가는 어느 정도
의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안  그런 작가도 수두룩하지만, 작가 정신이 상
실된 사람들도 많지만,  시대와 사회를 꿰뚫어 보는 눈은 그들  어릴 때부터 이상
한 환경과 습성에서 화석처럼 굳어져 생성된 것이기에 고고학자들이 화석을 믿듯 
여러분들은 진정한 작가를 믿어야 한다. 당 시대에 우습던 글들이 20년, 30년 후
에 비로소 감탄을 하며 읽는 경우가 많지 않는가. 여러분이  잘 아는 이상의 날개
도 마찬가지였으며,  윤동주는 자신의  시집이 나온 줄도  모르고 죽었다. 그러나 
윤동주는 말하지  않았는가. 내 이름자  묻힌 무덤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것이라고. 작가는 작가를 이해했고 이해한다.  동 시대 현재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동시대의 글을   동시대의 작가들은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의 심연을  아는 것이
다. 물론 100%의 확률은 아니다. 다만 현재인보다 그 확률이 높을 뿐이다.
  이제 결정했는가, 독자들이여. 
  검은 손인가, 아니면 붉은 손인가?


  이 세상에 얼마나 다중인격자가 많은가! 
  한 인간의 몸 속에 여러가지  인격과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일까? 나
쁜 일일까?  성장 과정에서 잘못 큰  사람, 잘못 배운 사람,  소설가의 몸 속에는 
분명히 여러 인격이 존재한다. 단순하지 않는 사람일 수록  다중인격자가 되기 쉬
운 법이다. 
  우리의 주인공 김은, 손바닥에 색깔이 나타나 사람들이 마음을  속일 수 없었던 
야만의 풍습이 점점 사라지면서, 결국  회사를 때려 치워고. 요즈음은 다중인격으
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이중인격자, 아니  다중인격자가 아닌가 하는 번
뇌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시장에서 물고기를 팔며 밥을 먹는다. 생선말이다. 
  이 생선 장수의 다중인격이라면 물고기 값을 속인 다거나 물이 간 생선을 싱싱
하다고 속여 파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천만에, 그게 아니다. 장
사보다도 평소에 오고  가며 사는 와중에 느끼게 되는 자신의  모순과 불합리, 불
쾌함, 폭발하는 성질, 착한 척하다가 못된  먹은 자가 되어 버리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거난 지하철을  탈 때 김은 시선을 어디에도 둘  수가 없었다. 마주앉
은 사람 빤히 쳐다 보다가는 시커면 손을 가진 자들에게 한 방 욕이나 주먹을 얻
어 맞을 수도  있겠고, 또 설사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면 어
색해서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건 상대방 쪽도 마찬가지인지  자꾸 김의 눈
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은 어떤 날은 상대방에게 고운  다정한 눈길을 보
내다가 또 어떤 날은 신경질적인  눈매를 하다가 또 어떤 날은 아주 위협적인 눈
초리를 하다가, 또  어떤 날은 아주 무관심하다는 무시하는 표정을  짓곤 했던 것
이다. 이런 것들이  요즘 김의 고민이었다. 버스나  지하철 속에서 눈길 하나조차 
제대로 바로할 수 없는 자신이 아주 못나고 몹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이 간신히  생각해 낸 수법이 바로  눈을 감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었
다. 
  그러나 그것도 목적지가  짧을 때나 통용될 수  있는 수법이지 밤새도록 잠  푹 
자고 나와서 상쾌한 아침부터  눈을 감고 있으려니 그것 또한 여간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김이 집에서 나와 시장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40분은 타고 가야 한다. 그 40분
이 매일 아침  김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졌다. 마치 지옥행 열차를  타고 가는 기분
이 매일 드는 것이었다. 차라리 염라대왕을 만나러 간다면  스릴이라도 있을 테지
만 이건 그런 것도 아니고 시커먼 땅속에서 지하철의 굉음과 탁한 공기와 사람들 
속에서 계속 참고 있어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고통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요즘  시장가에 새로 들어온 낯선  사람들. 또 전부터 알
던 사람들과도 뜸하게 만나면서 다시 인사하기가 자꾸만 서먹서먹하게 느껴져 결
국은 그들을 피하게 되는 증상이라든지, 그야말로 사람 만나기가  겁이 나고 피하
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생에 자신이 없어지고 
자신이 뭐 잘못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하면서 바로 살지 못하
고 있는 듯한 자신에 대한 불만이 계속 늘어만 갔다.  김의 손바닥은 이미 새카맣
게 변해 있었다.
  다중인격.
  자신의 몸 속에  또 다른 자신이 행동하고 있는 자.  야만의 풍습이 사라지면서 
이중인격보다 더 복잡한 다중인격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겠군.'
  김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  자체가 벌써 다중
인격자의 특성인지도 모른다. 자기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이 다중인격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대기가 온통 매연에 질식되어 있어  보통 사람에게
도 공연히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고, 짜증과 신경질이  나게 할 수도 있으며, 
또한 시끄러운  소리, 초록 빛이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 때문에  그럴 수도 있
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정상적으로 일하지만 기분이  상쾌하기는커녕 파괴적 
성격이 돌출하기  쉬운 것이다. 물론  한 인간의 욕심과 상대를  무시해야 마음이 
편한 이상 성격에서 유래할 수도 있지만 그 근본 원이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아직 
이 시대의 의학으로서는 풀기가 힘들었다.
  그런 판에 보통 사람인 김이 자신의 모순을 술술 풀어 행복해지기는 여간 어렵
지가 않다. 김은  물론 술과 담배를 먹는다.  그것 때문에 몸이 건강하지  않아서, 
위궤양과 두통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또 그 한 요인뿐만이  아닐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간 복잡하지가 않는  것이다. 하여튼 그렇게 김은  지금 나이 
사십을 살고 있다.  물론 결혼도 했고 청소년이 된 두  아들이 있다. 사춘기의 자
식들이 애를  먹여 그럴 수도  있고, 부부싸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서 
다중인격자가 되었느냐, 다중인격자이기 때문에 그래도 김이 제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집에서도 편치  않느냐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물
음과 똑같은 것이다.
  말이 좀 복잡해졌지만 다중인격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독자들도 한동안 참
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독자 자체가 다중인격인지도  모르고 또 이 글
을 이상하게 써 나가는 작가 자체가 다중인격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자신의 약점은 감추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이 물고기 값을 깍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만 요즈음 그 때마다 김은 이
상하게도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
런 손님들에게,
  "아이고 손님, 그렇게 깍다가는 물고기 먹을 것도 없겠수다."
하고 농담도 곧 잘 했지만 요즈음은 이상하게 그게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
해 보았자 쓸데없는 소리일  것 같고 결국 안 살 손님은 안  사고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요즘은 손님들도 좀  이상해져 빤히 생선을 보다가 그냥 휙 사라져 버
리니 언제 에누리를 해 주니 안 하 주니 하며 재미있는 실랑이를 벌일 틈도 없었
다. 마치 슈퍼마켓에서  물건 살 대처럼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산기만 바라보다가 
검은 비닐 봉지에 싸 주는  물건을 들고 나오는 것처럼 물고기를 그렇게 사 가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에 자연히 김도 묵묵히 물고기 대가리를 몇 마리 잘라
서 검은 비닐  봉지에 넣어 주고는 말없이 거스름 돈만  내주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장사도 도무지 신명이 나지 않았다. 돈도 좋지만  뭐 사는 재미도 좀 
있어야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점점 자기가 이상한지 손님들이 이상한지 분간이 
서질 않으면서 머리가 띵 해지는 현상과 함께 불쾌했던 것이다. 
  그렇게 돌아오는 지하철 안은 기분이 나쁜 게 당연했고 또 땅속 경치를 구경하
는 천연 동굴도 아니고 산소 부족. 먼지와 석면 가루가  검은 동굴을 날라 다니는 
곳에서 더욱 기분이  나빠진 채로 집에 와  밤참을 먹으면 으례 소화불량성  욕이 
식구들에게 나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면 스스로 자책감에 비참해지곤 했다.
  '왜 좀 참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지만 이미  자신의 인격은 상실된 것이었다.  두 자식의 
아버지로서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체면은  덕은 사리진 다음이었다.  그것이 몹시 
괴로운 김이었다. 그렇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제나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행동하
는 자신이 저주스러울 정도였다.
  언행의 불일치. 생각과  다르게만 행동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걷잡지  못하는 까
닭은 무엇일까?  언제부터일까? 이런 습관이  자신을 지배한 것은?  김은 머리를 
흔들며 괴로워 했다. 
  김은 만성 두통,  만성 위염, 만성 인후염, 만성 비염도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
서 몸이 괴롭기 때문에 정신력이  버티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야만의 풍
습이 사라진 사회의 모순으로  다중인격이 형성되었기 때문일까? 역시 알지 못할 
해답에 머리만 지끈지끈해 올 뿐이었다.
  요즘은 심장이 쑤시고 귀까지 멍한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 물고기 장사도 
신물이 난 지 오래다. 어떻게 사나?  무얼 하고 사나? 몸이 먼저냐? 정신이 먼저
냐? 때려 치우고 들어 앉으면 나을 병일까? 그러면 식구들은 누가 먹여 살리나?
  영국 속담에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이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
고, 한 달이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1년이 행복하려면 새 집으로 이사를 가고, 평
생이 행복하려면 정직하라고 했다. 그러한  면에서 김은 정직하다. 그런데도 행복
하지 않다면 이  영국 속담도 마지막 부분, 평생에서 완전한  해답은 제시하고 못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미로 같은  이 도시의 인생, 인간. 
  독자 여럽분은 이 김이라는 사람이 불행한 원인을 알겠습니까? 아니면, 행복한 
겁니까? 그저 그렇습니까? 아직도 김이 진실을  다 이야기하지 않고 뭔가 감추고 
있는 이중인격자로 보입니까? 아니면,  이 글의 작가가 다중인격입니까? 아까 소
설가는 다중인격자라고  했으니까요. 김  또한 소설가였으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
오.
  

  그렇지만 김은 생선 장사를 때려 치우지는  못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
냥 물러 나면 자신과 인생에 패한 도피자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
신의 다중인격 증상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였다. 발명된 곳에서 고치자, 라는 생
각이었지만, 과연, 사회에서  도시에서만 그 발병의 원인이  있는 것일까? 성격적 
유전은, 환경적 유전은, 받은 교육의 모순은 또 없었을까?  
  김은 야만의  풍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김으로서는  그게 최선의 생각이었다. 
그게 아직 그를 견디게 해 주는, 그래도 정직하게 물고기를  파는 생선 장수로 남
게 해 주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검은 손으로 더 이상 소설은 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갓 잡아 온 물고기들이 파닥파닥 살아 싱싱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때면 
생명력이 움트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차츰 줄어  들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건 분명 물고기들이 덜 싱싱해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이 썩고 있
기 때문이라고 김은 생각했다. 어떻게  움직이든 인생의 재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김은 자신이 이제 벼랑 끝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만이 아니라 이제 거리를  걸을 때도 예전보다 더  다른 
사람들의 눈이 거슬렸다. 모두 검은  손바닥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외국인과 마주보며 걸어 오게 되었을 때 그 외국
인이 일부러 김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겸손마저 느껴지는 모습으로 
스쳐 지나 갔을 때, 그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붉은 손을 보았을 때, 김은 그
는 우리보다 분명  문명과 예절이 발달된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편했
다. 그래서 김 스스로도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눈울 슬쩍 내려  깔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  외국인은 남자였는데 뭔가 생각하는 듯한 어쩌면  좀 외로운 듯한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이 도시의 졸부들과는 너무  달랐다. 적어도 상식과 예
의를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먹고 마시고 흥청대고 사기 치고 공갈하고 남 깔보는데만 뛰어난 이 도시의 졸
부들, 남녀들. 김처럼 정직하게만 살아도 괜찮겠지만  열 명에 서너 명이 인간 덜 
된 놈들이라면 나머지 사람들도 다 보기 싫어지게 마련이다.  만약 지하철 안에서 
마주앉은 사람들 가운데 둘 셋만 시끄럽게 떠들어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에잇, 지
하철 시끄럽고  꼴 보기 싫은 놈들  많아서 못 타겠다, 하며  지하철에 탔던 사람 
모두를 욕하게 돠고 마는 것이다. 착하고 얌전하고 성실한  사람들마저 결국 싸잡
혀 욕을 먹고 마는 것이다. 이 모순은 도시라는 환경  속에서 아니 유인원에서 머
리가 발달하면서 생겨나게  된 인건의 영악한 성격 탓이다. 누가  이 모순을 어떻
게 깨부술 수  있겠는가! 이 도시에서 사는  한 지하철 안 탈 수도  없고 사람 안 
볼 수도 없고,  그렇다면 어디 깊은 산 속으로라도 들어가야  할 판이다, 김은 그
렇게 혼자 요즘 쌩각하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정직하다는 것만으로  악마성은 없는 것일까? 정긱한데도  손바닥이 검다는 것
은 그걸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열흘이면 열흘,  한 달이면 한 달,  1년이면 1년 
과연 하루도 빠짐없이 정직하게  살았던 것일까? 하루라도 악마성이 나타난 날은 
없었을까? 한 인간의 폐쇄된  뒷면에 숨겨진 악마성. 이중성. 간사함. 교활함.  욕
망. 김에게 과연 그게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김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있었다. 시장가 사람들이나  심지어 식구들에게조차도 
몇 마디 하지 않았다. 설사 말을  한다하더라도 늘 당하는 쪽은 김이었다. 상식과 
예의도 없는 대부분의  그들은 욕과 주먹질부터 해  왔다. 그래서 김은 물러섰다. 
피곤했다. 산다는 것이. 절간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김은 운전을 배웠다. 그래서 어딘로든지  조용한데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하
던 물고기 장사를 때려 치울  수는 없었지만 운전 면허를 따고 싼 차를 한 대 샀
다.
  그리고 물고기 장사마저 때려  치울 수는 없었지만 김은 이틀이 멀다하고 야외
로 나갔다. 시원했다. 푸른 하늘, 초록의  나무들, 바람. 그러나 문제는 돌아올 때
였다. 밀리는 차들, 탁한 공기. 매연. 회색 빛 도시의 건믈, 검은 하늘. 그리고 잠
을 자고 나도 다음 날이면 불쾌한 아침이 또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혼자  나갈 때보다 일요일 아침쯤에 아내와 자식들 모두를 
태우고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혼자 가면 꼭  바람 맞은 남자나, 홀아
비처럼 힐끔힐끔 검은  손을 가진 자들이 쳐다보고  있어 야외로 나온 기분이  싹 
가시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오늘 문 닫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결코 장사를 때려 치우지 않았다. 또 어떨 때는 청소년이  다 된 아이들이 이제는 
각자 제 인생을 찾아 검은 세상으로 홀로 나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운전 피로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했다. 엉망인 교통 질서, 못되게 운
전하는 검은 손의 남녀들. 정말 그들의 눈동자는 지하철 앞에  앉은 자들 못지 않
게 김을 피곤하게  했다. 그들 또한 김에게 피로를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김은 자
신은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 탓만을 했다.
  하여간에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김은  자동차 타고 나
가는 것도 좀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장사는 아내가 도맡아 했다, 그런 아
내가 남편인 김에게 큰 불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남편
이 걱정되기도 하고 또 불만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김은 아예 이주를 생각했다. 조용한  시골이나, 숲 속으로 들어 가는 것
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걸 아내에게 이야기 했더니, 아내는,
  "당신 미쳤수?  장사는 어떡하고  뭐 먹고  살고, 또 아이들  교육은 어떡하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아내의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김은 슬슬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좀 더 자신
이 참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지만  김은 이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이 
언젠가 곧 실현될 이주를 따져보고 있었다. 
  아내와도 이야기가 잘  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김을 비
난하고 있다고 김은 벌써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분명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자기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것이 현재 김의 마음이었다.
  열 살 때의 생각이 다르고 스무 살 때의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서른 살 
때 세상을 느끼는  생각도 물론 다르고 마흔, 
쉰, 예순에  보는 세상에 대한 생각
이 다 다르다.  
그러니까 세상은 모순과 불합리 속에서 서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좀 더 젊었을  때는 불합리와 모순
과 
파괴성과 악마성 속에 살았을  수도 있으며 그가 그러했을 때 인격을 갖춘
 사
람들은 그에게 피로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양쪽도 불합리  속에서
 생겨난 다중
인격으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또 현재도 그렇게 어울려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슬플 때의 흰색 손과 화가 났을 때의 파란 손마저 잘 
 볼 수가 없었다. 사
람들은 모두 감정이 썩고 있는 것이었다. 더러운 검은 
 손이 지배하는 다중인격자
들의 세상이 되고만 것이었다. 
  그렇지만 김은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다시 정의가 이기는 시대가 올 것을 !! 그게 인간의 
착한 사람들의 꿈이니까....그건 의외로 간단하지.....
훌륭하고 착한 지도자 몇몇 있으면 해결된다!! 못 믿겠는가? 이 작가를 믿어라.
그렇지 않다면 이 글을 읽지 말라!!
  

  서기 2002년......
  후후, 그렇게 먼 미래 아니다. 지금 부터 3년 뒤 세상은 지금과 똑같겠지만
김이 이 왕국의 임금이 되고부터는 모두 빨간 손을 가진 자만이 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검은 손은 바로 악의 상징이었으니까 제 스스로 부끄러워 사
라진 것이다.  그건 물처럼 쉽게 흘러가는 시대의 흐름이며 악이 사라지면서 슬퍼
흰 손을 가진 자들도 기뻐하며 자연히 빨간 손을 가지게 된 것이다.
  김의 왕국은 그렇게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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